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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지역학

라피크 하리리(Rafic Hariri), 헤즈볼라 그리고 레바논

한국인들에게 있어 레바논은 동명부대가 파병된 분쟁지역이자 위험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할 겁니다. 심지어 레바논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조차도 모르는 분들이 많은것이 사실입니다. 지금 현재 저는 베이루트에 체류 중인데요, 그런만큼 이번엔 레바논에 대해 좀 적어볼까 합니다. 레바논은 중동지역, 특히 레반트(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렇게 5개 국가를 포함하는) 지역에 속해있는 나라로 다양한 종교와 정당들로 인한 불안정한 정치상황, 내전과 이스라엘과의 전쟁, 헤즈볼라, 라피크 하리리 등이 매우 유명한 나라입니다.

중동지역에 속해있는 대다수의 국가들이 무슬림 다수인 것에 반해 레바논은 종교가 비교적 다양한 나라입니다. 또한 지정학적으로는 시리아와 이스라엘을 국경으로 맞대고 있죠. 정치적으로는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 기독교의 한 종파인 마론파 등이 다양한 정당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레바논은 정치적 불안이 끊이질 않습니다. 각 정당들은 같은 수의 의석을 보장 받는데, 여러 정파들 중 헤즈볼라는 시아파를 대표하는 무장정파이며,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헤즈볼라의 영향력은 주로 남부지역 에서 강하며,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있어서도 레바논과 이스라엘이 아닌, 헤즈볼라와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죠. 어쨌거나 이러한 헤즈볼라와 더불어 각 종교를 대변하는 정파들은 어느 한 쪽에 권력이 실리지 않게끔 정치적 균형을 이루려 노력합니다. 따라서 대통령, 총리 등 주요 고위직들을 정당들에 따라 골고루 배치해 놓았죠. 예를들면 대통령은 기독교계, 총리는 수니파 이슬람을 선출하는 식의 밸런스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최근 시아파 총리가 당선되면서 레바논을 헤즈볼라에게 넘길 수 없다는 시위가 베이루트에서 일어나기도 했죠.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조금만 균형이 흔들려도 곧잘 사회적 이슈가 되는 듯 보입니다.

위와 같은 헤프닝은 작은 것이지만, 6년 전이었던 2005년 2월 14일 그 정치적 균형이 크게 깨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것이 바로 친서방정책을 펴던 수니파 출신의 전 총리 였던 라피크 하리리의 암살 사건입니다. 라피크 하리리는 수니파를 대표하는 총리였으며 베이루트의 다운타운에서 의문의 차량폭파테러로 인해 그의 경호원들과 함께 암살당했습니다. 그 이후 매년 2월14일이 되면 그와 그의 경호원들의 무덤이 있는 베이루트의 다운타운에서는 추모행사가 열립니다. 그에 따라 바로 어제였던 2월 14일, 그곳에서는 라피크 하리리에 대한 추모행사가 있었는데요, 그가 암살당한 시각으로 추정되는 오후 12시 55분에 맞춰 암상당한 장소에 위치한 봉화대 비슷한 조형물에선 불이 타오르고, 주변 모스크와 교회들은 일제히 종을 울립니다. 매년 이 날이 되면 레바논의 전국에 있는 하리리의 지지자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또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그의 죽음 전모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다운타운에 있는 그의 무덤으로 모여 행사를 열고 집회를 갖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인다고 하는데 어제는 베이루트에 비가 왔던 관계로 전년보다 사람이 좀 적었던것 같더군요. 하리리의 지지자들은 서방진영의 지원에 따라 암살자를 밝혀내는 일을 유엔에 회부했고 유엔은 법정을 열어 이를 밝혀내는 일을 진행해왔습니다. 항간에는 유엔이 이 일에 헤즈볼라의 몇몇 관료들이 관련되어있는 사실을 포착해 냈다는 이야기가 들리는데요. 헤즈볼라 측에서는 이를 완강히 부정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소행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헤즈볼라는 이번일로 여권 쪽에 긴급 각료회의 소집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고 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내각붕괴라는 초강수를 두었죠. 30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레바논의 내각은 이중 3분의 1만 사퇴를 해도 헌법상 내각을 구성할 수 없게 되어 있는데요. 헤즈볼라를 비롯 야권의 11명이 이탈을 함으로 내각이 붕괴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명확한 판결은 이번 달 혹은 다음 달 쯤 나올것으로 보이는데요, 판결에 따라 헤즈볼라의 쿠데타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예측도 간간히 보입니다. 이 곳에서 만난 China Central TV의 한 저널리스트는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이번 달과 다음 달이 고비가 될 것이라 보더군요.

위의 사진들은 하리리 추모행사장의 풍경들을 담은 것들입니다. 무장한 군인들과 그를 애도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수니 이슬람 정파를 상징하는 파란색 깃발을 든 부녀자들의 모습과 같은 여러 가지 광경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가장 제 가슴을 울렸던 풍경은 6년 전 죽은 아버지의 묘를 가득덮은 꽃에 키스를 하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저기 있다며, 천진한 얼굴로 하리리의 여러 경호원 중 한 사람의 묘를 가리키는 아이의 모습은 보는 제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갓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테러로 잃은, 그래서 아버지의 얼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있어 어른들의 정치와 테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사랑하는 아버지를 앗아간 테러를 아이는 훗날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분석들과 테러에 대한 온갖 정의들, 그리고 테러에 대한 명분들이 과연 아버지를 잃은 아이의 슬픔에 비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되는 날입니다.

요즘 중동은 한참 격변의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레바논 역시 일촉측발의 상황이지만 튀니지와 이집트에 이어 바레인과 이란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데요, 이러한 중요한 시기를 현지인 중동에서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제겐 행운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중동의 민주화 바람이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지, 또 헤즈볼라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매우 흥미로운 요즘입니다.



< 저작권자: 임숙경@MBA7.kr - http://middleeas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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