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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류학

생명체인 여성의 성의 '해방'?


Exodus from Women Gender

by MBA7.kr 서미원
2월 10일, 블로그에 첫 글을 올리자, 떨리는 마음이 대학원 합격통지 받을 때 못지 않습니다. 첫 글은, 수많은 얘기 보따리 중에,  여성과 생물학적 정체성에 관한 얘기 보따리에서 풀어보기로 했습니다.  '도대체, 여자로서의 나란 무엇이며,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누가 되어야 할까',  다른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그들의 역사와 더불어 살고 있는지 조금씩 비교해보려 합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 프랑스인 친구 한 명과 까페에서 만나 학교 학생회 얘기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저와 담론을 나눈 이 친구는 석사 과정 첫 학기부터 같은 수업을 들었고, 같이 학생 대표도 맡아하고, 가끔 둘이 만나 사회 운동 얘기며 이런 저런 정보를 교환했는데요, 젠더학 공부를 하는 철학도에, 에이즈 감염자와 성소수자 권리 옹호 단체인 Act-up에 참여하는 준 운동가이다보니 주변에 페미니스트들이 꽤 있는데, 페미니스트들 생활습관과 그이들의 신념에 대한 얘기를 듣던 중 저는 무척 놀랐습니다.

프랑스 페미니스트들이 생리대를 매우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고, 탐폰 사용을 선호하고, 혹은 아예 월경을 하지 않으려고 계속 피임약을 복용한다고... 고등 교육 과정에 있는 20대의 프랑스 여성들 중 생명체로서 자기의 능력을 부인하는 이들이 있다는 얘기는 우리나라에서 들은 적이 없어서.. 지금이야, 생리대보다 탐폰이 더 간편하겠고, 월경을 하지 않으면 편하겠고, 임신 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나중에 늙어서 어떻게 될런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 현재보다 미래를 생각하며 미리 준비한다는 게 젊은이들에게 조금 낯선 사고 방식인 듯 한데, 어쨌든 저의 상식 선에서는 이 프랑스의 페미니스트들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페미니스트들은 이렇게 극단적인 방식으로 여성의 생물학적 성을 거부하는 것보다 그것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 골똘히 고민하는 모습을 많이 봤지요. 우리 나라에서는 월경 증후군과 호르몬 계 이상이나 암 발생 증가 같은 건강 문제가 급부상한 사회 문제인데 반해, 여기 프랑스에서는 페미니스트들이 생각보다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문제라는 게 좀 놀라웠구요.

제가 속해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추구하고 싶은 생태여성사상 (에코페미니즘) 을 바탕으로 한 단체가 사회 운동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프랑스에도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프랑소와즈 도본느 라는 프랑스의 여성 작가가 "페미니즘 아니면 죽음 « Le féminisme ou la mort »" 이란 책에서 에코페미니즘을 언급한 것이 에코페미니즘의 시초라고 생각했던 거죠. (처음으로 용어를 사용 했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레이첼 카슨의 책이 먼저 쓰였다고 하고, 직접적으로 환경파괴와 인간이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사상이 내로라 하는 유명한 프랑스의 사상가(시몬 드 보부아르, 장 폴 사르트르, 장-폴 콕토) 들의 사상과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프랑스인들이 모르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솔직히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프랑스 여성들이 살고 있는 사회, 역사, 문화가 충분히 페미니스트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끔 만들겠구나 싶습니다. 첫째로, 민주적이고 투명한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들려는 환경에서 여성의 완전한 해방은 생물학적 존재로부터의 해방도 포함되고, 그에 대한 실천도 필요합니다. 둘째로, 자기 비난과 책망보다 자기를 방어하고 보호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항상 자신을 설명하고, 표현하고 방어할 수 있는 권리를 얻고, 또 요구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충분히 그 선택을 방어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주장하는 것들 (나의 습관을 바꾸는 대신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거나, 콘돔 사용을 요구하거나) 을 타인이 존중하는 것이 요구됩니다(물론 그 반대도 당연히 존중 받고요). 넷째, 다른 이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한, 자기 몸을 통제, 관리하는 데 쓰는 그 방식을 바꾸도록 강요하기 어렵구요. 다섯째, 인생 여정에 수 많은 모험이 실수와 실패가 존재하고 그것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건강을 위한 '올바른 길'을 따르지 않는다는 죄의식이나 사회적 압력이 적게 느껴집니다. 대화와 협상, 타협은 불연속 적이라도 끈질기게 이어지고, 그것이 서로의 거리 지키기, 관계를 유지하고 개인 개인이 사회에 뿌리 내리는 바탕이 되어 있으니까요.

이런 사회적 가치 말고도 생물학적 몸을 통제할 수 있는 기술 발전과 그에 대한 접근성이 다른 한 편에서 여성들을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말한 사회적 가치가 먼저 성취되었을지, 기술 발전이 먼저 이루어졌을 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술 발전과 그에 대한 접근이 의료적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된 것은 확실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낙태권'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낙태가 합법적으로 인정된 프랑스에서는 한 해 21만 건의 낙태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여전히 낙태 수술을 국내에서 받기가 어려워 다른 나라로 가는 경우가 한 해 약 5,000-6,000 건이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여성의 피임약 구매가 어디서든 가능하고, 정부와 보험회사에서 환급해주거나, 성관계 후 4,5일 뒤에 사용해도 착상을 막거나 떨어뜨릴 수 있는 사후 피임약을 개발하고, 공공유통 시키는 것을 고려하는(물론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사회적 공론이 이루어져 왔고요. 작년에는 5일 후에도 임신을 막는 사후피임약이 처방전을 받아야 살 수 있지만 65% 환급받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지요. (원어 기사)


2008년 화제가 된 피임과 낙태의 권리를 선전하는 지하철 광고 입니다.  일-드-프랑스 정부가 이 광고를 위해 300,000 유로를 지출하면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요. (사진 출처 : 2008년 1월 19일자 피가로) 프랑스 프로라이프 단체인 라이프 파라다이스는 이 광고가 "낙태 공짜로 해주니 여기로 와!"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비판하면서, 낙태 시술을 조직해주는 것보다 임신한 여성들 얘기를 듣고, 그들의 동행자가 되는 것(écouter et accompagner) 에 공공 지출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답니다. ('이야기를 듣고 동반자가 되자'는 얘기는 좌익 진영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문구이니 사실은 둘이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거지만요.)

프랑스의 몇 여성들이 취하는 선택은 첫째,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산업이 개입해 시민들과 알게 모르게 이해관계를 공고하게 다지게 되었던 유럽 국가들의 피할 수 없는 역사와 사회의 진화와 맞물려있고, 둘째, 이 의도치 않은 이해 관계 형성 과정에서 생물학적 여성의 특징에 대한 가치 부여가 주류로 인정받지 못하는 함정에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건, 낙태와 여성의 자신의 생식 능력을 통제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성이 낙태를 할 수 있는 결정권을 갖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낙태를 할 수 있는 사회 체제를 갖추는 것과 동시에 여성이 자기의 생식 능력을 적극적인 방식으로 온갖 기술을 동원해서 통제할 것을 예상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여성의 낙태권은 세계 많은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문제제기되고 있고,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현대 사회에서 여성 개인에게 가할 수 있는 비난과 낙인은 거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비난은 이러한 사회, 환경적 여건을 만들어 온 주체가 함께 짊어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누구에게 비난을 던지기 보다, 어떤 문화적, 사회적, 환경적 요건이 있느냐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위치에 대한 얘기를 듣고 이해하고, 그들과 동행하는 노력이 더 절실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다른 방식의 사고를 하는 페미니스트들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이 크게 늘었고 환경오염과 건강의 관련성을 체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대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산업과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발생된 수많은 시행착오를 책으로, 영상으로, 여행으로, 또 삶에서 관찰해 온 사람들이 많이 있고, 수많은 대안을 제안할 사람들이 숨어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선진한 국가들이 보여준 많은 문제들을 너무 잘 알아 좋은 것들만 취하려고 머리를 짜내는 불운아들만 모이는 사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어쨌든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인한 불확실하고 복잡한 사회 변화에 휩쓸려 인간애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에드가 모랑 (Edgar Morin) 이 '잃어버린 패러다임 : 인간성(le paradigme perdu : nature humaine)'에서 언급한 것처럼, 감정어린 본성을 미소와, 웃음과, 눈물을 통해 표현하고(225쪽), 우리 안에 살아있는, 자연으로부터 온, 또 사회에서 만들어진 인간성을 잘 지키고 주변인들과 나누는 것이지 싶습니다.



2009년 10월 17일 가두행진 (바스티유-오페라) : 여남평등, 불안한 고용 환경 개선, 아동 복지시설과 노령인구 지원 국가 서비스에 대한 요구한 범국가 대회 (자세한 대회 내용) (사진 출처 : 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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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서미원 @MBA7.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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